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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에서 존경받는 민족 연결고리 '손정도'목사
[최재영 목사의 4차 방북이야기]김정은 시대, 북한의 종교와 사회를 말하다’
 
은동기 기사입력  2014/10/17 [04:34]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나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북한에 관한 단편적인 지식들은 사실에 기초한 것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기자는 재미동포 평화운동가들을 주목하고 비교적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고 있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부 탈북자들을 통한 북한소식에는 진실보다는 가공되고 의도적인 역프로파간다식 선동이 보인다. 상대적으로 방북이 자유로운 입장에 있는 해외, 특히 재미동포들의 북한 방문이 이어지고 있고, 그들은 단순한 방문에 그치지 않고 남한에 북한 바로 알리기 운동(?)까지 펼치며 활발하게 통일운동에 뛰어들고 있다.
 
기자가 지켜본 바로는 재미동포 평화운동가로 오인동박사(하바드대 정형외과 의사.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이행우 미주동포전국협회장, 신은미(음악가)교수, 최재영목사(NK Vision 2020대표), Action for One Korea 정연진대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통일에 대한 거대담론과 풀뿌리 민중들을 넘나들며 북한에 관한 새로운 소식들을 육성이나 기행문을 통해 전해 주거나, 몇 달 간격으로 남한을 방문하고 전국을 순회하기도 한다. 그중 최근 북한을 방문, 10일간 체류하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한 최재영목사를 흥사단에서 만나 북한의 최근 소식을 들었다. 특히 개신교 성직자로써 최목사에게 ‘북한의 종교와 교회현황’은 남다른 관심의 대상으로 네 차례 방북을 통해 다른 분야보다 비교적 소상히 살펴 본 분야이기도 하다. <은동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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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AOK(Action for One Korea. 대표. 정연진) 와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흥민통)가 공동주최한 최재영 목사의 네 번째 방북이야기, ‘김정은 시대, 북한의 종교와 사회를 말하다’ 강연에 AOK회원들과 흥사단 회원들을 포함 약 40여명이 세미나실을 가득 메웠다. 
 
6일 당일 평양을 떠나 북경을 거쳐 인천공항에 내려 부랴부랴 흥사단을 찾은 최목사는 “평양에서의 일정이 빠듯해 어제는 한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피곤한 기색이 없이 “‘어떻게 하면 빨리 이 따끈따끈한 북녘소식을 서울에 전해주나?’ 하는 생각뿐이었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 최재영 목사     © 은동기

# 북한사회, 어떻게 변하고 있나. 
 
최목사에 의하면 아시안게임 개최 기간 중, 북한의 4개 TV방송(조선중앙TV, 용남산TV, 사회문화TV, 만수대TV)에서 북한선수들이 승리하는 장면들을 반복해서 방영했으며, 7위를 한 선수들을 환영하기 위해 평양에 수십만 명 의 인파가 거리로 나와 환영했다.
 
남북정상회담 때와는 달리 어른들과 학생, 어린이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단다. 환영 행사 중, 김책공대생들과 인터뷰를 했는데, 순박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것 같았다. 또한, 9년 만에 남북 공동으로 개천절 행사가 개최되었는데 최목사는 기독교 신자로 참석했다. 김구선생의 비서였던 김우진선생도 지팡이 짚고 참석했다.
 
최목사는 북한 체재 중, 지방에 내려가 농민들과 함께 벼 배기와 탈곡에 참여했는데 금년 농사는 풍년이라고 하며, 시골집에도 풍력 자가발전 시설을 설치하여 자체 적으로 전기를 해결하는 집들이 많았다.
 
신천의 박물관에 가면 부근에 한국전쟁 때, 102명의 아기들을 학살한 아기들의 무덤과 400여명의 산모들만 모아 죽인 부녀자들의 무덤, 그리고 전 세계 역사상 가장 큰 무덤이라는, 5천명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한 흡사 왕릉같은 무덤이 있다.
 
북한에도 인터넷이 통용이 되고 있지만, 구글 등 외부세계와는 연결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어 엄밀한 의미에서 전방위 소통을 위한 인터넷이라기 보다는 특정 단체 혹은 집단의 내부 소통을 위한 ‘인트라넷(Intranet)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다.
 
평양시는 도시계획이 잘 되어있으며 최목사가 방북할 때마다 많이 발전하고 있음을 실감할 만큼 초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곳곳마다 건측물이 들어서고 있으며 건설현장이 많이 눈에 띈다. 
 
최목사는 방북 때마다 외형적, 경제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면서 지도자가 계속 건설 등 경제부분에 대해 매일같이 현지를 답사하고 공무원들을 독려하는 모습에서 변화의 근거를 찾았다.
 
가는 곳마다 건설현장을 만나고 아파트와 빌딩들이 건축 중이거나 완공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평양의 거리마다 잔디와 정원들이 조성되고 마식령 스키장이 건설되고 있는데, 이는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시절의 생활방식이나 문화적 감각에 대한 경험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했다. 
 
또한, 서울시 면적만한 3개의 군을 완전히 목장으로 만들어 소 젖소, 돼지 등 각종 가축들을 방목하는 둥 목가적 풍경을 조성하고 있는 것은 김위원장의 스위스 유학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되며 풍광 좋은 스위스를 찾는 해외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둔 기획으로 보인다. 
 
현재 김정은 위원장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부분은 군사부분이다. 자신이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로서 기득권층으로 외국유학이나 다른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음에도 김일성 종합군사대학을 선택한데서 그가 국가경영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주민들의 생활, 특히 복지, 의료, 문화부분 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많은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목사는 체류기간 중 일반인들과의 접촉에서 통제된 사회의 한 측면을 보았다. 인터넷은 있되 철저하게 외부세계와는 차단되어 있는 탓인지 싸이나 유튜브, 동성애자 등에 관해 질문을 던져보면 전혀 모르고 있고 교회, 예배당, 성경책에 관해서도 전혀 아는 바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 같은 반응은 태어나면서부터 주체사상 외에는 그 어떤 정신적 영양분을 섭취해 본 적이 없는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 어떤 종교나 사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통일에 대한 2,500만 북한 주민들의 생각은 하나뿐이며 북한의 통일정책 또한 변한 적도 없다. 그들은 민족통일보다 ‘조국통일’을 강조하며 쌍둥이를 낳으면 조국과 통일이라고 이름을 짓는다.
 
그들은 ‘통일’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성적이며, 아주 평범한 주민들도 통일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모든 주민들이 얼굴이 생기가 돌면서 논리적으로 열변을 토한다. 그리고 남북 통일을 원치 않는 외세들을 배제한 자주적인 통일을 주장한다. 
  
주민들은 아침에 농장 아니면 공장으로 출근한다. 농장에서 수확한 추수물은 국가에 일정부분 납부하고 나머지는 조합원들이 자체적으로 똑같이 나눈다. 중동 근로자들 또한 벌어들이는 외화 중 정부에 납부하고 난 나머지는 소득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의 배급체제’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북한 나름대로의 체제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재북인사 묘역

재북인사 묘역에는 65명의 재북인사들이 묻혀 있는데 김약수 전 국회부의장 등 재헌 국회의원 16명, 이춘호 초대 서울대총장, 현상윤 고대 초대 총장, 춘원 이광수,  연세대 세브란스 원장 고명우선생,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던 백상규선생 등이 있다.
 
최목사는 65명 전원을 사진에 담아왔다. 춘원 이광수의 묘를 찾는 과정에서 춘원의 무덤이 아파트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고증을 통해 알게 된 북한 당국은 아파트를 헐어내고 춘원의 묘를 발굴, 시신을 찾아냈다고 한다.
 
재북 인사 묘역에는 자진 월북자, 납북자를 포함 이데올로기로 얽히고 설킨 남과 북의 비극적 현실에서 뭐라고 입장을 정리하기 어려운 인사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전에 ‘민족21’에서도 취재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최재영 목사     © 은동기
 
#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

북한에는 기능 별로 다섯 종류의 교회가 있는데 포괄적 기독교 교회로 불리며 개신교뿐만 아니라 천주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사역교회 : 실제로 예배를 드리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교회를 말한다.(봉수교회. 칠골교회. 장충성당. 정백교회) 봉수교회는 이북의 대표적 교회로 작년 7월 방북 시, 최목사가 설교한바 있다.

칠골교회는 김일성주석의 어머니인 강반석 여사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로 사적관과 강반석 여사의 좌상 등 여러 부대시설이 있다. 김일성주석이 어렸을 때 다니던 초등학교인 창덕학교와 담임선생 강양욱 목사에게 2년 반 동안 배웠던 교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창덕학교는 김일성주석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장로가 설립했다.

장충성당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평신도 협의회 회장과 부회장들이 사제복을 입고 사제들과 똑같이 예배를 행한다. 정백교회는 500석 규모의 러시아정교회 성당으로 김정일위원장이 직접 평양의 젊은이들을 러시아로 유학 보내서 사제서품을 받게 했고 그들이 현재 목회하고 있다.

▲사적지 교회 : 교회이지만 예배는 드리지 않는다.(포평교회, 은율읍교회) 호평교회는 김일성주석의 부모인 김형직과 강반석, 김일성주석의 외삼촌, 김일성주석의 삼형제(김성주, 김영주, 김철주)등 온 가족들이 섬긴 교회이며, 황해도 은율교회는  개조하여 김형직의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다용도 교회 : (평양 제일교회)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장소에 남측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에서 6억원들 들여 온실과 함께 설립했으나 현재는 폐쇄되어 있다.

▲직장교회 : (개성신원교회, 금강산교회, 신포교회, 금호성당)  개성 신원교회는 북한의 영토 안에 남측에서 지은 교회로 ‘신원 에벤에셀’에서 신원그룹 회장인 박상철 장로가 개성공단 안에 지었다. 금강산교회는 금강산 안 수양관 자리에 설립했으며, 금호성당은 KEDO 경수로공사 200만평의 공사현장에 3천여명의  근로자들을 위해 생활관 부지 안에 지었으며 현재는 철수로 폐쇄 상태이다.

▲대학교회 : 한국과 미주의 교회들의 헌금으로 ‘평양 과기대’안에 채플실을 만듬. 

▲추진 중에 중단된 교회 : 평양 국제하베스트교회, 평양 장대현교회

▲현재 추진 중에 있는 교회 : 평양국제외국인 교회, 빌리그레함 목사의 아들, 프랭크린 그레함이 김정은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친서로 승인을 받음. 그 외에 나선 신해리 교회와 평양에 어린이 전문병원으로 30평 규모인 조용기 신장병원이 있으며 북한의 유일한 목회자를 배출하는 평양 신학원도 있다.
 
최목사는 “제가 북한의 교회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남과 북이 서로 적으로 생각하는 상대방의 묘지를 찾아가서 어루만지고 애도하고 추도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그것이 곧 통일의 시작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최목사는 다른 글에서 북한 교회가 대외 선전용이냐 진정한 신앙심이 깃든 교회냐로 의견이 분분한데 대해 “우리와는 다르지만 하나의 교회”라고 분명히 못 박으며. 그 예로 성공회가 영국 여왕을 교회의 수장으로 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어도 개신교의  주요 교단 중 하나이듯이, 북한 교회도 북한 체제와의 관계를 볼 때 낯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 교회가 가짜 교회라고 말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했다.
 
최목사는 “큰 그림으로 보면 2,500만 북한주민들은 종교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것은 아마도 주체사상에 대해 만족할 정도의 사상교육이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덧붙였다.
 
최목사가 느낀 바로는 북한의 주민들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한심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것 같다고 전한다. 오히려 전 세계 종교는 형성되는데 수천 년이 걸렸지만, 주체사상은 불과 몇십 년 만에 이뤄졌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지하교회 외에는 종교에 대해 관심이 없고 적극 권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탄압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최목사는 북한에서 예배 중 들키면 총살한다는 것은 굉장히 오버한 얘기로 거기도 ‘사람 사는 곳으로’ 다른 세상과 별로 다를 것 없다면서 일부 탈북자들에 의해 왜곡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최목사는 북한 교회에 대해 저만큼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면서 “한마디로 가만히 내버려둬도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로 결론은 적극적으로 종교를 권장하지도, 그렇다고 핍박하지도 않는, 종교에 대해 그냥 관심이 없는 사회”로 정의했다.
 
단, 지하교회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다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구금되어 있는 케네스 배 목사의 경우, 그는 목사가 아니라 미국 예수 전도단 소속 선교사로 중국에서 북한 선교 목적으로 나진 선봉 경제특구 전문 여행사를 설립한 기독교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분이지만,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한 내재적인 접근방법, 즉 눈높이 선교보다는 일방적으로 CD나 전도지를 배포하는 일방적인 선교방식으로 김정일 정권을 언급하고 체제전복 내용 등을 돌린 것이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북측에서는 이러한 케네스 배 선교사를 5년 이상 예의 주시하고 있었으며, 체포된 날도 단기 선교대상 대학생들을 인솔, 나진선봉에 가서 성경에 나오는 ‘여리고 성’ 작전을 펴듯 한데 대해 북한 당국이 허용 범위를 넘은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지하교회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가정교회가 허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하교회는 순수한 종교활동이 아닌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남한에서 보낸 비디오테이프로 성경을 공부하는 가정교회가 허용되고 있는데 왜 지하교회를 조직하는냐는 주장이다. 실제로 최목사는 현재 520여개에 달한다는 가정교회에 가서 얘배를 본 적도 있다고 전한다.   
 
봉수교회나 칠벌교회 두 교회는 이북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적인 대표 교회이기 때문에 관련자들이나 목회자들은 당성이 철저하고 북한 당국의  방침을 존중한다. 우리는 성경에 절대적 가치를 따르지만, 저들은 그것보다 조국통일을 이루는 것이 북한교회의 최대 지상 과제인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국가 기념일이 있으면 예배도 드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종교인들이 이에 대해 불평하고 시정을 요구하자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 한다. 철저한 주체사상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지하교회를 조직하는 행위 외에는 구태여 종교를 탄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최목사는 1972년부터 허용된 예배라는 종교행위에 대해 “북한의 가정교회는 순수하다”고 말한다.    
 
▲ 최재영 목사     © 은동기

# 남과 북에서 존경받는 민족의 연결고리, 손정도 목사

최목사는 ‘손정도목사 기념학술원’을 설립한 계기로 ‘남과 북으로 갈린 분단국에서 남과 북을 이어주는 고리의 위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천착한 끝에 남.북한 공히 사상과 체제를 초월하여 유일하게 존경받는 인물로 항일운동으로 조선독립에 헌신했던 손정도목사를 알게 된다.
 
남한사회보다는 북한에서 더욱 유명한 손목사는 북한 교과서에 그에 대한 얘기가 실려 있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나 남한에서는 교인들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손정도 목사 얘기는 한편의 대하소설이고 한국 현대사이다.

손정도목사는 김일성주석의 생명의 은인으로 김주석을 용문중학교 입학하게 해주고 양자처럼 친아들로 삼아주었으며 김주석이 공산주의를 학습할 때, 길림예배당을 장소로 빌려주기도 했으며, 김주석은 용문중학교 재학 중, 성가대 대장과 주일학교 교사 일을 맡아 하기도 했다.
 
김주석은 자서전 ‘세기와 더불어’에서 공산주의 학습을 하다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어 수감생활 할 때, 손목사가 중국관리 장작상에게 부탁하여 빼내 주기도 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그 자서전에서 ‘손정도 목사님은 나의 국부이고 나의 친아버지이고 생명의 은인이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손목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초대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초대 원장으로 입법의 아버지로 불리운다. 큰아들인 손원일을 중국 상해의 중앙대학 항해과에 보내 후에 남한의 해군제독이 되었다.
 
▲  도산 안창호(좌)와 손정도 목사(우)   © 백과사전

'한 아버지의 두 아들, 한국전쟁에 총사령관으로 총부리 겨뤄'

작은 아들 손원태는 김일성의 어렸을 때 절친한 친구였고 미국에서 저명한 의사로 일하다가 2004년에 작고했으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와 YWCA 회장을 지낸 손인실 씨가 그의 누나이다. 한국 최초의 여류 공군비행사로 항일교육에 전념했으며 공군을 창설한 권기옥도 상해 임정 시절, 손목사의 많은 도움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관순열사가 독립운동에 나섰던 것도 손정도목사의 영향이 컸다. 모태 신앙이었던 유관순은 이화학당시절 손정도 목사가 담임하던 정동감리교회를 2년간 다니면서,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품게 되었고, 유관순이 외쳤던 "대한독립 만세"는 손정도 목사가 뿌린 말씀의 씨앗이 자란 열매로 평가되고 있다.
 
독립운동가로서, 항일 투쟁가로, 정동감리교회 목회자로, 만주 최소의 감리교선교사로 헌신했던 손목사는 ‘걸레철학’을 창설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비단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걸레가 없으면 살지 못하니 너희들은 걸레가 되라’고 가르쳤다. 사실 백범 김구나 이승만, 도산 안창호보다 더욱 이름이 날수 있는 위치와 환경에 있었지만 자기의 공로를 감추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 삶을 살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한국 전쟁 때, 한 아버지의 두 아들이 남과 북에서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을 치뤘다. 손원일은 한국의 해군제독이 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실질적인 육해공 총사령관으로, 동생 손원태의 절친한 친구였고 손목사의 친 아들 같았던 김일성은 북한군 총사령관이 되어 전쟁에 참여했다.
 
손정도 목사와 큰아들 손원일제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둘째 아들인 손원태박사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김주석은 평양의 금수산기념궁전에 묻혀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분단된 조국의 슬프고 비극적인 이 나라와 우리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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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목사]
83년부터 목회를 하기 시작한 최목사는 ‘NK VISION 2020’를 운영하고 있다.
New Korea Vision 2020은 평화적이고 주권적인 통일을 이룩할 수 있도록 민족화합을 위한 현실적인 연구와 정책사업을 남과 북 그리고 해외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통일 추진기구, SIM GROUP(통일을 위한 남북사회통합운동그룹)을 운영하며 ▲손정도목사 기념사업회 ▲동북아 종교위원회 ▲남북동반성장위원회 ▲오작교 포럼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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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10/17 [04:34]  최종편집: ⓒ w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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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도 목사.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최재영 목사의 4차 방북이야기. 관련기사목록